4. ORIGIN / 시작의 이유와 출발점
패션은 나의 생존 수단
여러분에게 ‘옷’, ‘패션’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저는 한국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쩌면 평균보다 조금은 부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너무 소심한 탓에 부모님 손에 이끌려 웅변학원에 보내짐(?) 당하기도 했죠. (지금은 웅변학원이라는게 있나 모르겠네요? 🫥)
어린 시절부터 저는
공부나 운동에 특출난 것도 뛰어난 외모나 유머 감각을 가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친구들 무리 속에서 리더가 되어본 적도 없고 누군가가 저를 부러워하거나 따라한 기억도 거의 없습니다.
반장이나 부반장은 생전 꿈도 못 꿨었죠.
심지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다른 애들은 수학이든, 축구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혹은 유머나 입담이든 뭔가 하나씩은 ‘나 이거 해’라는 게 있었는데
저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린 나이에 무의식적인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이대로라면 나는 평생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 되겠구나.’
남들보다 앞선 무기가 없었기에 저만의 날카로운 무기를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자연계에서는 수컷동물들이 암컷보다 화려한 것을 알고계신가요?
우연히 주말 오후에 아버지와 함께 본 동물의 왕국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남들보다 특출나지 않다면,
‘보이는 것’이라도 확실히 하자.
이것이 저의 생존 수단이었습니다. 공작새 처럼 화려한 날개가 필요했습니다. 남들보다 특출난게 없는 제가 살려면요.
옷에 대한 집착과 시행착오
그래서 중학생 시절인 어린나이부터 옷에 대해 까칠하게 접근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어린 나이에 옷에 그렇게 병적으로 집착(소매 길이, 밑단 길이, 허벅지 둘레, 전체적인 실루엣 등을 체크)하는 학생은 저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이 없고, 인터넷도 별로 발달되지 않은 시대여서 정보가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구요.
아무 옷이나 입지 않았습니다.
차곡 차곡 돈을 모아 온갖 종류의 온/오프라인 쇼핑을 했었습니다. 돈이 없으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빈티지 구제 의류를 구매 하거나 기존의 옷을 판매하며 다시 새로운 옷을 구매했었습니다. 무엇이 나에게 잘 어울리는지 탐색했습니다.
또한 지금은 너무도 유명한 동묘지만 무한도전에서 지드래곤이 동묘를 가기 이전 즉 할아버지들 외에 다른 연령층이 관심이 별로 없던 시절에도 혼자 할아버지 틈에서 옷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동대문 두타나 밀리오레에서 형들한테 협박 당하며 돈도 뜯기면서 이상한 옷을 구매해본 적도 있구요.
과거 온라인 1세대 쇼핑몰의 저품질의 비싼 이상한 곳도 구매했습니다.
한 벌 한 벌을 ‘탐색’과 ‘실험’의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내 삶의 터닝포인트
그러던 어느날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정말 잘 생기고 인기 많은 친구가 제 신발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너는 신발 어디서 사?
‘얘가 나한테 이런 걸 왜 물어보는 거야?’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신발은 어디서 사는지, 어느 브랜드인지, 사이즈는 어떻게 가야 하는지 설명을 하니까 저에게 다른 옷에 대한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그때를 시작으로 소위 말하는 ‘자신감’이라는 게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더욱 자신감에 탄력이 붙더니 주변 친구들의 패션 자문은 기본이 되었습니다. 제가 입는 옷은 주변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막바지에는 이성관계는 물론이고 주변 모든 인간관계와 상황이 자신감이 넘치고 모든것이 안정되니까 공부에도 전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별것 아닌것 같아보이는데 10대때는 또래집단의 힘이 엄청난 것 알고 계시죠?
10대들이 엄마 아빠 말은 안들어도 한 학년 위의 형 누나 언니 오빠 한테는 껌뻑 죽습니다.
그들이 연예인이자 대통령이자 황제거든요 그 시절에는.
또래 집단의 인정에 죽고 사는게 10대입니다. (진짜 말 그대로)
이 작은 성공경험을 만드는 것이 바로 터닝포인트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후에 - 전문성이 더해진 17년의 집착
서울의 한 대학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하며 취미였던 패션에 '공학적 논리'를 더했습니다.
전국 단위 패션 동아리에서 기획 활동을 학교 내 패션 소모임에서 패션 활동을 거쳐 졸업 당시에는 울(Wool) 섬유 소재에 관한 논문을 썼고 취미로 시작한 패션 컨설팅은 수익을 내는 사이드 잡이 되었습니다.
졸업 후에는 거의 100:1에 가까운 경쟁을 뚫고 대한민국 재계 순위 5위 안에 드는 대기업 공채를 통과하여 글로벌 패션 계열사 한국사업부의 신입사원으로 재직했습니다.
서울 탑티어 대학의 문과생들 밭인 곳에서 공대생이 말이죠.
그곳에서 좋은 옷’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더욱 저만의 철학을 쌓아 나갔습니다.
결국 패션을 감각적으로도, 공학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패션은 인생의 레버(Lever)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더 분명해진 것이 있습니다.
옷은 단순히 몸에 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옷차림이 달라졌을 뿐인데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저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잘 갖추어진 모습은 생각보다 큰 자신감을 만들었고 그 자신감은 태도와 행동, 목표와 성취에까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옷이 사람의 태도와 사고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옷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레버가 될 수 있다는 것을요.
위의 내용을 비단 저만 생각하는 내용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500억 달러의 사나이로 불리는 CEO 댄 페냐
유튜버 소울정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
이 분들은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도 아니고 패션 관련 종사자도 아니고 옷을 파는 행위를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옷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저 뿐만 아니라 이를 경험해본 여러 사람들이 입 아프게 말하고 있죠.
어린 시절, 키도 작고 공부도 잘하지 못했으며 소심한 성격 탓에 ‘못해, 안돼’를 입에 달고 살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시작해서 서울에서도 가장 안좋은 학군지를 지나 결국 서울의 공대에 진학했습니다.
연고 하나 없는 지구 반대편에서 홀로 살아보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기도하고, 글로벌 패션 기업의 주요 포지션에 입사하여 비즈니스를 배우고 작은 스타트업의 임원으로도 일했습니다.
출판사에서는다 안된다고 말했지만 제 이야기를 좋아해주신 독자분들을 만나 누적 1억 원의 펀딩이라는 결과도 만들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을 생각입니다.









옷이 주는 힘을 알기에 그리고 그 놀라운 힘을 직접 경험해보면서 아무것도 없던 어린시절의 나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해준 놀라운 변화 그 시작에는 항상 나를 최고의 상태로 만들어 주는 옷이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입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더 선명하게 느끼고 더 좋은 상태로 살아가게 만드는 옷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영역에서 창조적 파괴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조력자가 되고 어린 시절의 저처럼 아직 자기만의 무기를 찾지 못한 누군가에게도 작은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유니폼’ 그것이 아르케니스를 시작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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